영화 〈장손〉은 전통적 가족관계의 무게와 세대 간 충돌을 그린 깊이 있는 가족 드라마입니다. 6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작품상 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세대의 단절과 화해, 그리고 ‘장손’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합니다.
“당신에게 ‘장손’은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 〈장손〉은 제목에서부터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과 상징을 건드립니다. 그저 가족의 맏아들이 아닌, 대를 잇는 존재, 제사의 주인, 가문의 책임자로 불리는 '장손'. 이 무게감 있는 두 글자 속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대와 억압, 무언의 강제를 담아왔을까요?
오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장손〉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압력,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각자의 진실을 예민하게 포착한 이 영화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 줄거리: 제사를 중심으로 모인 가족, 그리고 균열의 시작
작은 마을에서 3대째 두부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성진(강승호)은 장손으로서 가업을 잇고,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성진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사직한 상태이며, 가업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갈팡질팡입니다.
조부모의 합동 제사를 위해 모인 가족은 평온한 듯하지만, 작은 대화와 침묵 속에 쌓여온 갈등이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아버지 승필(우상전)과의 관계, 오랫동안 침묵해온 가족 내 진실, 그리고 할머니 말녀(손숙)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 모든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장손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전통,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 그리고 한 가족의 무거운 과거. 성진은 이 삼중의 벽 앞에 서게 됩니다.
🎥 인물 간의 긴장과 카메라 워크, 장인의 손길
〈장손〉은 말보다 ‘침묵’이 많은 영화입니다. 인물의 대사보다, 그들이 피하는 시선, 굳게 닫힌 문, 멀어지는 카메라 앵글에서 그들이 감추고 있는 감정이 흘러나옵니다.
특히 성진과 아버지의 관계는 이 영화의 중심축입니다. 둘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적고, 주로 시선 회피나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엔 말로 다할 수 없는 불안, 미움, 그리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촬영감독 이진근의 카메라는 이 모든 감정을 효과적으로 포착합니다. 좁은 실내 공간, 오래된 두부공장, 낡은 시골집 등이 보여주는 수직적, 수평적 구도는 ‘가족이라는 구조물’이 얼마나 견고하면서도 취약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 작품 해석: ‘장손’이라는 짐을 짊어진 세대의 이야기
‘장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단순히 한 사람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제도이며, 강제된 전통입니다. 영화는 이 전통이 현대의 가치와 얼마나 충돌하는지를 고요하지만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성진은 책임감 있는 아들이지만, 그 ‘역할’이 자신의 삶을 옥죄는 것처럼 느낍니다. 제사 준비에 참여하며 가족과 부딪히고, 할머니의 유언을 통해 잊혀졌던 가족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장손’이라는 자리가 만들어낸 억압의 실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장손〉은 전통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균열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균열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진폭, 슬픔, 미움, 그리고 이해의 순간을 포착하며 가족이라는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 6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작품상 후보에 빛나는 <장손>
2025년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장손〉은 당당히 영화 부문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와 함께 후보에 오른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도시의 사랑법〉
- 〈리볼버〉
- 〈장손〉
- 〈전,란〉
- 〈하얼빈〉
이들 작품은 각각 사랑, 스릴러, 전쟁, 가족 등 서로 다른 주제와 장르를 다루며,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과 깊이를 보여주는 면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손〉은 ‘소리 없이 강한’ 영화입니다. 화려한 액션도, 거대한 서사도 없지만, 오히려 일상이라는 피부에 밀착한 소재를 통해 더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게 하고, ‘나 역시 누군가의 장손/장녀일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 마무리: 장손이란 이름을 둘러싼 모든 것
〈장손〉은 단지 가족 이야기만을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성장 서사이자, 세대 간 갈등의 역사이며, 우리가 간과해온 전통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전통’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백상예술대상 후보에 오른 〈장손〉이 수상의 영광을 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가 남긴 정서는 오래도록 한국 영화 팬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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